벚꽃 날리는 봄날의 햇살, 청춘 그 자체를 담아낸 미학: 영화 <하나와 앨리스>

리뷰안녕하세요, 영화 전문 큐레이터이자 영화 리뷰 블로거입니다.
봄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유독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04년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명작 <하나와 앨리스(Hana & Alice)>입니다. 흩날리는 벚꽃 잎, 교복을 입고 깔깔거리는 두 소녀의 웃음소리, 그리고 어설프지만 서툴러서 더욱 사랑스러운 짝사랑의 기억까지. 이 작품은 그야말로 '청춘 그 자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서정시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요구해 주신 대로 줄거리, 감상평, 그리고 주목할 점(봄의 미학과 이와이 슌지표 미장센)이라는 3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풍성하고 밀도 있는 글로 세밀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 1. 줄거리: 엉뚱한 거짓말에서 시작된 세 남녀의 이상하고 아름다운 삼각관계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순간을 함께 공유해 온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 '하나(스즈키 안 분)'와 '앨리스(아오이 유 분)'의 하교 길 풍경으로 시작됩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봄날, 두 사람은 매일 아침 등굣길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선배 '마사시(곽지민/카쿠 토모히로 분)'를 주목하게 됩니다. 단짝 친구 앨리스의 적극적인 부추김 속에서 사춘기 소녀 특유의 수줍은 짝사랑을 키워가던 하나는 마사시 선배가 속한 낙어(일본 전통 구류 연극) 동아리에 따라 가입하며 그와의 접점을 늘려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길에서 책을 읽으며 걷던 마사시가 가게 셔터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사시가 정신을 차리자, 그 장면을 목격한 하나는 얼결에 "선배, 기억 안 나세요? 선배가 저한테 고백했잖아요! 고백을 까먹을 만큼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예요"라는 황당하고 대담한 거짓말을 던집니다. 머리의 충격 때문에 얼떨떨해진 마사시는 하나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게 되고, 두 사람의 기묘하고 어설픈 연애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마사시가 자신의 휴대폰에 남아있던 앨리스의 사진을 발견하고 의구심을 품자, 위기를 느낀 하나는 앨리스까지 끌어들여 "앨리스는 선배의 전 여자친구였다"라는 또 다른 거대한 거짓말을 짓어내기에 이릅니다. 거짓말을 맞추기 위해 셋이 함께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데이트를 시뮬레이션하면서, 가짜 전 여자 친구 역할을 맡은 앨리스와 마사시 사이에 미묘하고 진짜 같은 감정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마사시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진짜 첫사랑'이 하나가 아닌 앨리스였을지도 모른다는 착각과 혼란에 빠지고, 앨리스 역시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봐 주는 마사시에게 이끌립니다. 우정과 소유욕,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선명해지는 첫사랑의 감정이 유쾌하면서도 씁쓸하게 얽혀 들어가며, 세 청춘의 봄날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2. 감상평: 찬란해서 서글픈 그 시절, 무해하고 투명한 성장의 기록
<하나와 앨리스>를 관람하는 일은 단순히 타인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모두의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10대 시절의 첫사랑과 청춘의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만져보는 감성적인 경험입니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는 자극적이거나 신파적인 갈등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투와 거짓말로 얼룩질 수 있는 삼각관계라는 클리셰적 소재를,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무해하고 순수한 시선으로 어루만져 한없이 맑고 어여쁜 성장담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슴 시린 매력입니다. 영화 속 하나와 앨리스는 완성된 어른이 아닙니다. 이기적이고 엉뚱한 거짓말을 치기도 하고, 소중한 우정과 설레는 사랑 사이에서 좌절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툼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 나이대의 청춘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파릇파릇한 생명력으로 빛납니다. 특히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외로움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던 앨리스가, 거짓말 속에서 만난 마사시와의 시간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서사는 심금을 울리는 깊은 정서적 울림을 안겨줍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앨리스의 발레 오디션 장면은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종이컵을 테이프로 발에 동여매고 토슈즈 대신 신은 채, 햇살이 쏟아지는 교실 바닥에서 펼치는 앨리스의 춤사위는 언어와 문장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 춤은 단순히 오디션 통과를 위한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불안했던 유년 시절과 안녕을 고하고 세상 향해 당당히 날개를 펼치는 청춘의 고백이자 선언입니다. 풋풋했던 봄날의 바람처럼 가슴을 간지럽히면서도 끝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이 영화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진 가장 빛나는 정수를 관객의 영혼에 아로새겨 놓습니다.
3. 주목할 점: 봄을 시각화한 차가운 햇살과 흩날리는 벚꽃, 그리고 아오이 유라는 신화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리뷰할 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미학적 관전 포인트는 '봄이라는 계절을 오감으로 재현해 낸 시각적 미장센'과 '아오이 유라는 배우가 완성해 낸 독보적인 청춘의 이미지'입니다.첫째, 이 영화는 '봄이 가진 온도와 공기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옮겨놓은 계절의 영화'입니다. 원래 단편 디지털 스페셜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디지털카메라 특유의 뽀얗고 투명한 광원 활용이 돋보입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 교복을 입고 달리는 소녀들의 잔상, 나뭇잎 사이로 바서적거리며 비쳐 드는 역광, 봄비가 내려 촉촉하게 적셔진 일본 거리의 풍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실시간으로 봄날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탐정놀이 같은 아기자기한 음악과 클래식 피아노 선율을 직접 작곡하고 배치하여, 화면 가득 봄의 생동감과 아련함을 겹겹이 스케치해 냈습니다. 둘째, '아오이 유라는 배우의 역사적인 발견과 그녀가 보여준 압도적인 신체 언어'입니다. <하나와 앨리스>를 통해 단숨에 시대의 아이콘이자 스타덤에 오른 아오이 유는, 밝음 뒤에 슬픔을 간직한 앨리스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입체적으로 소화해 냈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발레 장면은 대역 없이 실제 발레 전공자였던 아오이 유의 경이로운 신체 표현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신발도 갖추어지지 않은 빈 교실에서 오직 순수한 몸짓만으로 자유를 갈구하며 피어나는 그녀의 춤은, 영화의 주제의식인 '자아의 각성과 성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완벽한 조각품과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와 앨리스>는 시간이 흘러 수십 년이 지나도 결코 빛바래지 않는 서정성과 미학을 간직한 걸작입니다. 거짓말로 시작된 엉뚱한 소동극조차 청춘이라는 찬란한 햇살 아래서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작품.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불거나 따스한 위로가 필요할 때, 벚꽃 향기처럼 찾아와 우리 마음을 풋풋하게 물들여 줄 세상에서 가장 정결하고 어여쁜 봄날의 선물입니다.